또 시작된 엄마의 하소연, 이 건 신세타령이 아니라 '랩' 이야!
나의 휴대폰 통화 내역은 '엄마' 로 도배되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내 목 소리를 듣지 않으면 못 배기는 남자 가 있기를 해, 학생 때처럼 미주알 고주알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있기를 해, 제발 훌륭한 원고를 주시어 저희 출판사를 빛내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편집자 역시 전혀 없는 터. 이다지도 인기 없는 나를 끊임없이 찾아주는 건 배 아파 낳은 딸내미의 일거수일 투족이 궁금한 어머니.
오, 나의 어 머니뿐인 것이다.
대개는 어디야, 그 래서 지금 뭐 하는데, 하는 안부를 묻는 것으로 통화가 마무리되곤 한다.
그러나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휴대폰이 뜨거워져 귓바퀴에 화상을 입기 직전까지 당신의
한풀이를 들어줘야지만 겨우겨우 전화를 끊을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보통의 날에 비해 저기압인 날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라면 큰 문제다.
이제 막 노년기에 접어든 엄마는 세상만사가 불만이다.
"딸이 셋씩이나 있는데 뭐가 그렇게 들 바쁜지 한 놈도 먼저 전화를 안 해.
너는 어느 세월에 유명해져서 엄마 호강시켜줄래?
내가 평생을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던 사람인데 요즘에는 하도 잠이 안와서 밤을 꼬박 새우는 거야. 입맛은 왜 이렇게 없는지, 이거는 무슨 밥알이 아니라 모래알 같아서 목구 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아요. 안 그래도 성질나 죽겠는데 날씨까지 환장 하게 더우니 내가 살 수가 있어? 죽어야지. 아유, 내가 그냥 확 죽어 버려야지 더 살아서 뭐 해."
즐거운 일 하나 없어 날마다 신음하는 엄마의 모습이 딱하기는 하지만, 그 푸념을 하루걸러 한 번씩 듣는 나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휴대폰 화면에 '엄마' 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오늘은 또 무슨 앓는 소리를 하려나 덜컥 겁부터 나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하루하루 고민이 깊어가던 차에 법륜 스님과 한 여자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걱정거리를 안고 있던 그녀는 제 어머니의 넋두리에 시달려도 보통 시달린 것이 아닌 모양인지 눈물까지 훔쳐 가며 자신의 힘겨운 심정을 스님께 토로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새가 우는 것을 노래라 여기면 듣기에 좋고 울부짖음이라 여기면 듣기에 괴롭다.
앞으로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노래라고 생각해 봐라.
네, 엄마, 아이고, 얼마나 힘드세요, 대충 맞장구나 치면서 노래를 들을 때처럼 그냥 흘려버리고
말아라. 스님의 말씀에 부옇던 머릿속이 말갛게 개는 듯하였다.
그래, 그럼 되겠다. 엄마는 가수, 나는 청중, 참 말이지 명쾌한 해결 방법이로구나.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은 걸 보니 이번 통화는
최소 한 시간 짜리다. 나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전화기에 연결하는 것으로 엄마의 노래를 감상할 채비를 마쳤다.
엄마는 누군가를 흉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이의 잘못을 조용조용 읊조리다가,
말이 차츰차츰 빨라짐에 따라 감정이 격해지더니만, 후에는 차마 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온갖 된소리를 내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말이 아니라 랩이다. 이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래퍼다. 지금 내가 듣는 건
신세타령이 아니라 힙합 뮤직이다.
마음속으로 되뇌니 신기하게도 정말 그리 느껴졌다. 이야, 우리 어머니 노래 한번 잘하신다.
전국 노래자랑 나가면 최우수상 받겠어.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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